지난해 서울 한 지방법원 형사법정. 직장인 A씨(42)는 평소라면 결코 앉을 일이 없었던 배심원석에 앉아 살인 혐의 피고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법관도, 검사도, 변호인도 아닌 그가 그 자리에 선 이유는 단 하나, '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일반 시민이 실질적 판단 권한을 부여받은 것은 이 제도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1월 1일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시행과 함께 공식 도입됐다. 법원, 검찰, 변호인단으로만 구성되던 폐쇄적 형사재판 구조에 일반 시민을 끌어들여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도입 당시 한국은 영미권의 배심제와 유럽 대륙의 참심제를 절충한 독자적 모델을 설계했다. 배심원의 평결이 법관을 법적으로 기속하지는 않지만, 법관이 이를 존중해야 하는 구조적 압력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순수한 자문 기구와도 구별된다.
배심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원칙적으로 배심원 후보가 될 수 있다. 다만 법조인, 경찰관, 교도관 등 형사사법 관련 종사자와 피고인과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제외된다. 법원은 무작위 추출 방식으로 관할 지역 주민 중 배심원 후보를 선정하고, 출석한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변호인이 참여하는 '배심원 선정 기일'을 거쳐 최종 7명(중범죄의 경우 9명)의 배심원과 예비 배심원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이유 없이 일정 수의 후보를 기피할 수 있는 '무이유 기피권'을 행사할 수 있어, 사실상 가장 치열한 법정 공방이 재판 시작 전부터 벌어진다.
재판이 시작되면 배심원은 검사와 변호인의 모두진술, 증인 신문, 증거 조사, 최후 변론을 모두 듣는다. 이 과정에서 배심원은 재판장의 허가를 받아 증인에게 직접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점이 일반 재판과 크게 다른 대목이다. 모든 심리가 끝나면 배심원들은 평의실에 들어가 법관 없이 독립적으로 유무죄를 토론하고, 전원일치 또는 다수결로 평결을 내린다. 평결서가 법정에 낭독되는 순간, 수십 년간 법복을 입어온 판사와 평생 법정 한 번 못 가봤을 시민이 동등한 의견 제출자로 마주서는 장면이 연출된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제도 도입 이후 2023년까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사건은 누적 4,000건을 넘어섰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체 형사 1심 사건 대비 참여재판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집계된다. 피고인이 신청권을 갖는 구조상, 상당수 피고인이 재판 장기화나 공개적 심리에 대한 부담으로 신청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사건 유형별로는 살인·강도·성범죄 등 중대 범죄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배심원 평결과 법관 판결이 일치하는 비율은 약 85~90%로 집계되어, 사법부가 배심원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참여재판의 가장 큰 의미는 '사법 민주화'라는 상징성에 있다. 법조 엘리트 집단 내부에서만 이루어지던 형사 판단에 시민의 상식과 공동체 가치관이 투영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실제로 일부 사건에서는 배심원 평결이 검찰 구형이나 법관의 초기 판단과 상이하게 나타나, 법조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09년 한 성범죄 사건에서 배심원단이 무죄 평결을 내렸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무죄 선고를 한 사례는 당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처럼 참여재판은 법관의 시각에서 포착되지 못할 수 있는 사회 통념과 피해자 감정을 재판부에 전달하는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 한계도 분명하다. 우선 피고인의 신청권을 전제로 하는 구조 탓에, 실제로 재판이 필요한 사건에서 참여재판이 이루어지지 않는 역설이 발생한다. 또한 배심원단이 법률적 용어와 복잡한 증거 법칙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전문성 문제도 꾸준히 제기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배심원이 감정에 치우쳐 법리적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판이 사흘에서 길게는 수십 일씩 이어지는 경우, 직장인 배심원의 생업 손실 보전 문제도 현실적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배심원에게 지급되는 일당은 5만 원 내외로, 실질적 소득 보전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민참여재판을 더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피고인 신청 방식에서 검사나 법원이 필요적 참여재판을 지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확대하거나, 배심원 평결의 기속력을 강화해 실질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법학계에서는 배심원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화하고, 평의 과정에서 전문 법률 보좌인의 지원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국민참여재판은 단순한 제도적 실험을 넘어, 시민이 공동체의 법적 판단에 직접 참여한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구현하는 장치다. 제도가 형식이 아닌 실질로 작동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