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거래화'…트럼프 2기, 1년 반의 기록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한 지 약 1년 반이 지난 2026년 7월 현재, 한미 관계는 전통적인 동맹 프레임을 유지하면서도 통상·안보 양 축에서 상당한 긴장을 내포한 '이중 압박' 구도 속에 놓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트럼프 1기의 경험이 일종의 예고편이었다면, 2기는 보다 체계화된 방식으로 동맹국에 비용 부담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른 국면이라는 시각이 많다. 워싱턴은 한국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과 함께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핵심 수출품에 대한 관세 협상을 동시에 요구하며 거래적 동맹관의 복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이는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온 기존의 한미 협력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방위비 분담금: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숫자 싸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양국 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26년 초 기존 합의 금액의 두 배 이상을 요구하는 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국 측은 이에 대해 '상호 존중에 기반한 합리적 수준'의 분담을 주장하며 팽팽한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최종 타결 시점이 올해 말에서 내년 초로 밀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협상이 지연될 경우 주한미군 운용에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는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이 협상이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한미 동맹의 미래 구조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역대 방위비 분담금 협상 사례를 돌아보면, 트럼프 1기 당시에도 미국은 기존 대비 대폭 인상을 요구했으나 최종 타결은 협상 개시로부터 1년 이상 소요된 바 있어, 현재의 교착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관세 압박의 현실: 수출 둔화와 산업별 충격
통상 분야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도입한 보편 관세 및 품목별 고율 관세가 한국 수출 기업들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대미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둔화세가 뚜렷하며,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철강 분야의 타격이 두드러진다. 자동차 산업 역시 미국의 완성차 및 부품 관세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현지 생산 비중을 높이려는 기업들의 전략적 대응이 가속화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기 대응과 중장기 현지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직면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들은 미국 내 추가 공장 설립이나 합작 투자 확대를 통해 관세 장벽을 우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적 대응: IRA 혜택·LNG·방산 카드의 복합 전략
한국 정부는 미국 측과의 양자 통상협의 채널을 가동하면서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체 혜택 확보와 관세 예외 적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협상 레버리지 차원에서는 미국산 LNG 추가 도입 및 방산 장비 구매 확대 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으며, 실제로 일부 품목에서는 구체적인 협의가 진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구조를 고려할 때, 미국산 에너지·방산 제품의 전략적 구매는 협상 균형을 맞추는 현실적 선택지로 평가된다. 다만 이 같은 '패키지 딜' 방식이 자칫 불균형한 양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하며, 국내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산 LNG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북핵 변수와 '코리아 패싱' 우려
북핵 문제와 한반도 안보 구도 역시 한미 관계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북한과의 직접 대화 재개 의지를 내비쳐 왔으나, 실질적인 미북 접촉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핵 협상 과정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정부는 어떠한 형태의 미북 협상도 한국의 안보 이익과 비핵화 원칙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견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외교적 사전 조율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 1기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었던 만큼, 한국 외교 당국은 워싱턴과의 긴밀한 협의 채널 유지를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두고 있다.
전문가 시각: '비용-편익 언어'로 동맹을 설득하라
외교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두고 한미 동맹의 '구조적 재편기'로 규정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관계학과의 한 교수는 "트럼프 2기의 거래적 동맹관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 기조"라며 "한국은 동맹의 가치를 비용-편익 언어로 설득하는 새로운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의 '혈맹' 프레임이나 역사적 공동체 의식만으로는 현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을 반영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내에서 차지하는 군사·기술·경제적 가치를 구체적 수치와 논리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주한미군의 역내 억제력 기여, 한국 기업의 미국 내 고용 창출 효과 등을 정량화해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지정학적 레버리지
중국과의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인도·태평양 구도 속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가 여전히 미국에 유효한 협상 레버리지로 작용할 수 있다는 낙관적 시각도 공존한다.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첨단 산업에서 한국이 보유한 기술력은 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과 맞닿아 있으며, 이는 한국이 단순한 동맹 비용 부담자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의 반도체·소재 산업은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구축에서 핵심 연결고리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서 한국의 협상력이 단기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중장기적으로 강화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며, 특히 첨단 반도체 제조 역량을 보유한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중요성은 미국 내에서도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전망: '전략적 모호성의 동맹'에서 '능동적 동맹 재설계'로
한미 관계는 당분간 갈등 요인을 관리하며 협력의 틀을 유지하는 '전략적 모호성의 동맹'으로 운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수동적 관리 전략을 넘어 한국이 동맹의 새로운 아젠다를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능동적 동맹 재설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방위비·관세라는 두 압박 요인이 구조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양국 관계의 불안정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한미 동맹의 지속가능성은 한국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자국의 가치와 기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며, 이를 위한 외교적 역량 강화와 국내 산업 경쟁력 유지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