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협정 목표와 현실의 간극…24년 남은 시계
2026년 7월 현재,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UNFCCC) 당사국들의 탄소중립 달성 시한이 24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국들의 정책 이행 수준이 국제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올해 초 발표된 기후행동추적(CAT)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각국이 제출한 국가결정기여(NDC) 목표를 모두 이행하더라도 금세기 말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은 산업화 이전 대비 2.4도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파리협정이 제시한 1.5도 목표와는 여전히 큰 괴리가 있는 셈이다. 이는 현재의 기후 공약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실질적인 이행 속도를 대폭 높여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로 해석된다.
과학계는 1.5도 임계점 초과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다. 해수면 상승 가속, 극단적 기상 현상 빈도 증가, 생태계 교란 등 비가역적 변화가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10년(2014~2023년)이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10년으로 기록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2030년까지 전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세 배로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두 배로 개선해야 1.5도 경로를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각국의 정책 전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NDC의 구조적 한계…법적 구속력 없는 자발적 약속의 딜레마
NDC는 각국이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온실가스 감축 계획으로, 파리협정의 핵심 이행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없고 검증 수단도 제한적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배출 격차 보고서'는 현재 NDC 이행만으로는 2030년 배출량을 충분히 줄이기 어렵다고 반복해서 지적해 왔다. 국가별 산정 방식과 기준 연도가 달라 목표치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도 국제 협력의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NDC의 이행 여부보다 이행 수단의 질적 수준—즉 탄소 가격제의 실효성,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 화석연료 보조금 철폐 의지—이 실제 감축 성과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3%에만 탄소 가격제가 적용되고 있으며, 그 가격 수준도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유도하기에는 여전히 낮다는 평가다. 각국이 NDC를 5년 주기로 상향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래칫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으나, 실제로 목표를 상향한 국가의 비율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결국 제도적 틀보다 각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와 사회적 합의가 NDC 실현의 관건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연방과 주(州)의 엇박자 속 정책 불확실성
미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후속 집행이 현 행정부에서 속도를 달리하면서 정책 연속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연방 차원의 청정에너지 보조금 일부가 재검토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캘리포니아·뉴욕 등 민주당 주지사가 이끄는 주 정부들은 자체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재생에너지 의무화 비율 상향을 통해 연방 정책의 빈틈을 메우는 모양새다. 미국의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인 2005년 대비 50~52% 감축 달성 가능성을 놓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의 기후 정책이 행정부 교체마다 요동치는 구조적 원인으로는 의회 입법 없이 행정명령에 크게 의존하는 정책 추진 방식이 꼽힌다. IRA는 의회를 통과한 법률이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만, 세부 시행 규칙 해석 및 예산 집행 과정에서 행정부의 재량이 크게 작용한다. 미국 내 풍력·태양광 산업 종사자 수는 최근 수년간 빠르게 증가해 화석연료 관련 일자리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는 기후 정책의 정치적 지형을 서서히 바꾸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민간 기업들이 주도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CM) 역시 연방 정책의 공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크레딧의 신뢰성 문제가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EU: CBAM으로 글로벌 탄소 가격 기준 선점 나서
유럽연합(EU)은 2026년 1월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의 본격 과금 단계에 돌입하면서 글로벌 탄소 가격 기준점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CBAM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력·수소 등 탄소 집약적 수입품에 EU 역내 탄소가격에 상응하는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로, 세계 최초의 무역 연계 탄소 규제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 감축,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Fit for 55' 패키지를 차질 없이 이행 중이라고 밝혔다.
EU ETS(배출권거래제)는 2005년 도입 이후 꾸준히 개혁을 거듭하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탄소 가격 제도로 평가받는다. 무상 할당 물량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CBAM과 연계해 탄소 누출(carbon leakage) 방지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동유럽 일부 회원국의 석탄 의존도 문제와 에너지 빈곤층 대책 등은 여전히 해결 과제로 남아 있으며, 회원국 간 재정 역량 격차가 전환 속도의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U는 이에 대응해 '사회기후기금(Social Climate Fund)'을 신설, 취약 계층의 에너지 전환 비용을 보전하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 재생에너지 1위이지만 석탄 비중 50% 넘는 '이중 구조'
중국은 2060년 탄소중립, 2030년 탄소 피크(배출 정점)를 공식 목표로 내걸고 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태양광·풍력 설비 용량에서 이미 세계 1위를 기록 중이며, 전기차 시장 점유율도 전 세계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석탄 발전 비중이 여전히 전체 전력 생산의 50%를 넘는 상황이어서 실질적인 탄소 감축 속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중국의 재생에너지 확대와 석탄 의존이라는 이중 구조는 경제 성장 유지와 에너지 안보라는 두 가지 정책 목표가 충돌하는 데서 비롯된다. 중국 정부는 전국 단위 ETS를 점진적으로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탄소 가격 수준이 EU 등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이 2030년 이전에 탄소 피크를 앞당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일부 분석기관은 경제 구조 변화와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고려할 때 조기 피크 달성이 가능하다는 낙관론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 투명성과 독립적 검증 문제는 국제 신뢰 확보의 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 탄소중립 법제화했지만 속도·분배 논쟁 지속
한국은 2030년 NDC로 2018년 대비 40% 감축, 2050년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상태다. 정부는 '제3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통해 무탄소에너지(CFE) 확대와 청정수소 생태계 조성을 두 축으로 삼겠다고 밝혔으며, 원자력을 무탄소 전원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재생에너지, 원전, 수소를 아우르는 에너지 믹스 다변화가 한국형 탄소중립 전략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고, 산업계 감축 부담 분배 방식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탄소 집약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한국의 산업 구조상, 감축 목표 달성 과정에서 고용과 경쟁력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이 CBAM 등 무역 연계 탄소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경우 수출 경쟁력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기후 정책과 산업 경쟁력을 동시에 고려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전략 수립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청정수소·CCUS…차세대 감축 기술의 부상과 현실적 장벽
주요국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차세대 감축 기술로는 청정수소와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이 꼽힌다. 미국의 IRA는 청정수소 생산에 대한 세액공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EU는 수소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역내 청정수소 1,000만 톤 생산과 동량의 수입을 목표로 내세웠다. 한국도 청정수소 생태계를 탄소중립 핵심 축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암모니아 혼소 발전, 수소환원제철 등 실증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청정수소의 경우 생산 원가 경쟁력 확보와 저장·운송 인프라 구축에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현재 그린수소 생산 단가는 화석연료 기반 수소 대비 여전히 높아 대규모 상용화까지는 기술 혁신과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 CCUS 역시 상업적 규모의 도입까지 기술적·경제적 장벽이 남아 있어, 이를 감축 계획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한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부 환경단체는 CCUS가 화석연료 의존을 연장하는 '그린워싱' 수단으로 오용될 수 있다고 경계한다. 기술적 잠재력을 현실화하기 위한 공공 연구개발(R&D) 투자와 민간 자본 유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2026~2030년 '임계 분기점'…정책 일관성과 글로벌 연대가 관건
전문가들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가 각국의 탄소 감축 궤적을 결정짓는 '임계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정책 일관성과 재정 수단의 실효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시기에 설치되는 에너지 인프라와 산업 설비가 이후 수십 년간 탄소 배출 구조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고착화된 인프라는 '좌초 자산(stranded assets)' 문제로 이어져 경제적 손실을 증폭시킨다.
정치 사이클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 기후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각국의 공통 숙제로 떠오르고 있으며, 선진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기후 재정 지원 확대도 글로벌 목표 달성의 필요조건으로 꼽힌다. 탄소중립은 단순한 환경 의제를 넘어 에너지 안보, 무역 경쟁력, 사회적 형평성과 맞닿은 복합적 과제다. 미국·EU·중국·한국 등 주요 배출국들이 2030년까지 얼마나 의미 있는 감축 성과를 실증하느냐가 2050년 목표의 현실 가능성을 판가름하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며, 각국의 선택이 향후 수십 년의 경제 지형과 지구 환경을 동시에 바꿀 것이라는 데 전문가들은 이견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