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분권 강화를 향한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재정 이전 없이 행정 권한만 지방자치단체에 넘기는 현행 방식이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회와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방이양 일괄법 개정안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정작 지방자치단체들은 새로운 권한을 떠안으면서도 이를 집행할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아 행정력 소진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방재정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지방에 이양된 사무는 400건을 넘어섰지만, 이에 상응하는 재정 이전 비율은 60%에 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분권 논의의 역사는 1991년 지방의회 부활과 1995년 민선 단체장 선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30여 년간 크고 작은 지방분권 관련 법률이 제정·개정됐지만, 재정 자립도는 오히려 악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243개 지방자치단체의 평균 재정 자립도는 2010년 52.2%에서 2023년 기준 43.1%로 약 9%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인구 5만 명 미만의 소규모 군 단위 자치단체의 경우 재정 자립도가 10%대에 머무는 곳도 상당수에 달해, 중앙 교부금 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는 구조적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권한 이양의 대표적 사례로는 사회복지 분야를 꼽을 수 있다. 기초생활보장 급여, 노인 돌봄 서비스, 장애인 활동 지원 등 복지 사업의 집행 권한이 지방으로 대거 이전됐지만, 재원 분담 비율은 중앙 대 지방이 평균 8 대 2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실제 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 비용과 추가 서비스 수요는 지방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다. 경기도의 한 기초자치단체 복지 담당 공무원은 '권한은 넘어왔지만 예산은 늘 부족하고, 주민 민원은 자치단체가 다 받아야 하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 분야 지출 비중은 2010년 전체 예산의 23%에서 2023년 35%를 넘어서며 다른 분야 재정을 잠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조세 권한의 중앙 집중을 지목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은 2023년 기준 약 76 대 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5 대 45와 비교해 지방세 비중이 현저히 낮다. 지방세 수입이 한정된 상황에서 권한만 늘어나면 지방의 재정 압박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한 교수는 '지방이 스스로 세원을 발굴하고 과세할 수 있는 자율권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분권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소비세율을 현행 25.3%에서 35% 이상으로 높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 사례와의 비교는 한국의 지방분권 한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독일의 경우 연방제를 기반으로 각 주(란트)가 독자적인 과세 권한을 보유하며, 연방과 주 간 재정 조정 시스템을 통해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는 정교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스웨덴의 지방정부는 소득세의 일정 비율을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지방세가 전체 세수의 약 35%를 차지한다. 일본 역시 2000년대 '삼위일체 개혁'을 통해 국고보조금 삭감, 지방교부세 개혁, 세원 이양을 패키지로 추진하며 지방의 재정 자율성을 높였다. 반면 한국은 권한 이양은 있으되 세원 이양은 소극적인 '반쪽 분권'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지방분권의 불균형 문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 심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재정 자립도가 높은 서울·경기 지역은 권한 이양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로 세수 확보가 어려운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는 권한 이양이 오히려 짐이 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해 있다. 2023년 기준 전북 장수군의 재정 자립도는 6.2%, 경남 합천군은 7.1%에 불과해 자체 사업 추진 여력이 사실상 전무한 수준이다. 지방재정 전문가인 충북대 행정학과 한 교수는 '권한 이양이 지역 불균형을 오히려 고착화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며 '재정 형평화 시스템의 정교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개선 방향으로는 크게 세 가지 접근이 논의되고 있다. 첫째,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일정 비율을 지방소비세로 전환하는 세원 이양 확대다. 현행 25.3%에서 최소 30% 이상으로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40%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안이 지방자치단체 협의회 측에서 제안됐다. 둘째, 권한 이양 시 의무적으로 소요 비용을 산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재원을 동시에 이전하는 '비용 추계 연동제' 도입이다. 셋째, 지방교부세 교부 기준을 재정 수요 중심으로 전면 재편해 인구 감소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행정안전부는 일부 방안에 긍정적인 입장이지만, 기획재정부와의 부처 간 이견으로 실질적인 진전은 더딘 상태다.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중앙정부의 재정 권한 분산에 대한 저항,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 간의 이해관계 충돌, 정치적 의제로서의 우선순위 부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분권이 다시 한번 정치적 화두로 떠오를 가능성은 있지만, 실질적 재정 이전을 동반한 구조 개혁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 추세대로라면 2030년 전국 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재정 위기 단계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권한 이양과 재원 이전의 동반 없이는 지방분권이 지방 소멸을 가속화하는 역설을 낳을 수 있다는 경고는, 더 이상 이론적 우려에 머물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