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에 접어든 GP 선정 경쟁, 6파전의 실상
한국산업은행 동남권투자금융센터가 주관하는 '2026 남부권 지역성장지원펀드' VC 부문 위탁운용사(GP) 선정 절차가 최종 단계에 돌입했다. 대덕벤처파트너스, 리인베스트먼트, 엠더블유앤컴퍼니, 원익투자파트너스, 이앤인베스트먼트,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 등 6개사가 쇼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으며, 최종적으로 3곳이 위탁운용사로 낙점될 예정이다. 이번 경쟁에는 각 사의 운용 철학과 지역 네트워크, 포트폴리오 성과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되는 만큼 어느 해보다 높은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국내 정책금융 시장에서 산업은행이 발주하는 대규모 벤처펀드 GP 자리는 안정적인 운용보수와 향후 후속 정책펀드 수탁 가능성을 함께 보장한다는 점에서 VC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최근 민간 벤처투자 시장이 글로벌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 여파로 위축된 상황에서, 정책펀드 GP 자리는 운용사의 안정적 수익 기반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선정 결과가 향후 2~3년간 남부권 VC 시장의 주도권을 사실상 결정짓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050억원 규모 펀드, 무엇을 목표로 하나
산업은행은 최종 선정된 3개 운용사를 통해 총 1050억원 규모의 VC 펀드를 조성하고, 남부권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및 지역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각 운용사별로 약 350억원 내외의 펀드를 결성하게 되며, 산업은행의 정책자금이 앵커(anchor) 출자자로 참여하고 민간 자금을 추가로 매칭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이 같은 구조는 정책자금의 마중물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민간 투자자의 참여를 촉진하는 이중 목적을 갖는다.
남부권은 부산·울산·경남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권으로, 수도권 대비 벤처투자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낮아 정책자금을 통한 마중물 효과가 특히 중요하다. 실제로 국내 벤처투자 지역별 분포를 보면 수도권 집중 현상이 뚜렷하며, 비수도권 지역의 투자 유치 비중은 전체의 30% 내외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균형 발전을 국정 과제로 삼고 있는 현 정책 기조와 맞물려, 이번 펀드는 단순한 수익 추구 수단이 아닌 지역 산업 생태계 조성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평가 기준의 질적 전환: 회수 수익률보다 '밸류업'
이번 심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과거 회수 수익률보다 피투자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와 성장 지원 역량을 핵심 평가 요소로 삼는다는 점이다. 기존 정책펀드 심사에서는 IRR(내부수익률) 등 정량 지표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했으나, 이번 선정 기준은 VC가 투자 이후 얼마나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 기업의 성장을 견인했는지를 따진다는 점에서 질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투자 후 후속 라운드 유치 지원 실적, 경영 멘토링 및 네트워크 연결 횟수, 피투자기업 매출 성장률 등이 보조 지표로 활용될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기준 변화는 단기 수익 극대화보다 지속 가능한 투자 생태계 조성을 우선시하는 정책 방향을 반영한 것으로, VC업계 전반에 투자 철학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신호로도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밸류업 역량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기준이 아직 업계 표준으로 정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사의 주관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평가 방식이 확산될 경우, 국내 VC 산업 전반의 투자 후 관리(post-investment management) 역량 향상에 긍정적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6개 후보사, 각자의 전략으로 차별화 경쟁
쇼트리스트에 오른 6개사는 저마다의 경쟁 우위를 내세우며 치열한 PT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역 밀착형 네트워크 구축, 대기업 계열사와의 연계 인프라, 초기 스타트업 보육 역량, TIPS(기술혁신 창업자금) 연계 투자 경험 등이 주요 차별화 포인트로 거론된다. 각 후보사는 남부권 지역 대학, 연구소, 산업단지와의 협력 방안을 제안서에 구체적으로 담아 지역 밀착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남부권 특성상 제조·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스타트업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해당 섹터의 딥테크 투자 경험을 보유한 운용사가 유리한 위치에 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은 현대자동차, 삼성SDI, 롯데케미칼 등 대형 제조 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급망 스타트업과 소부장 딥테크 기업이 다수 포진해 있어, 이 분야의 투자 레퍼런스가 심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쿨리지코너인베스트먼트와 원익투자파트너스의 경우 각각 초기 투자와 제조업 연계 투자 경험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업계 전언도 있다.
유력 후보로 주목받는 이앤인베스트먼트
업계에서는 이앤인베스트먼트를 유력 후보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이 회사는 높은 매칭 자금 확보율과 우수한 회수 실적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펀드 결성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정 시 조기 펀드 결성과 신속한 투자 집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정책자금의 효율적 집행을 원하는 산업은행 입장에서 중요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만 최종 결과는 심사위원회의 종합 평가에 달려 있어, 나머지 후보사들의 전략적 제안서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리인베스트먼트와 대덕벤처파트너스 역시 각각의 독자적인 지역 투자 네트워크와 딥테크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경쟁력을 어필하고 있다. 심사위원회가 운용사 간 포트폴리오의 다양성과 상호 보완성을 고려한 조합 선정을 할 가능성도 있어, 단일 최강자보다 '균형 잡힌 3인방' 구도로 결론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정책펀드 시장의 구조적 의미와 공공적 책임
국내 벤처캐피털 시장에서 정책금융 기관이 출자하는 정책펀드는 전체 벤처투자 재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축이다. 산업은행, 한국벤처투자(KVIC), 기술보증기금 등 주요 정책금융 기관이 출자한 모태펀드·지역펀드 등은 민간 LP 참여가 부족한 시장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해왔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정책자금의 비중은 연간 투자액 기준으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만큼, GP 선정은 사실상 시장 형성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적 의사결정이다.
지역성장지원펀드와 같은 특수목적 펀드는 특정 지역의 벤처생태계를 집중 육성한다는 명확한 정책 의도 아래 운용되며, GP에게는 운용 역량 증명의 기회인 동시에 공공적 책임도 함께 부여된다. 펀드 운용 중 투자 지역 준수 의무, 피투자기업 현황 정기 보고, 회수 후 지역 재투자 권고 등 다양한 정책적 의무 조항이 수반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전문가들은 정책펀드 GP가 단순한 '수탁 운용자'가 아닌 지역 생태계의 '앵커 투자자(anchor investor)' 역할을 자임해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역 벤처생태계 활성화와 균형 발전 과제
남부권은 자동차·조선·화학 등 전통 제조업 기반이 강하지만, 산업 구조 전환 과정에서 신산업·스타트업 생태계의 조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우수 창업 인재와 자본이 서울·경기권으로 유출되는 문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정책자금을 통한 지역 내 투자 활성화는 이 흐름을 일부 역전시킬 수 있는 실질적 수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각각 지역 특화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병행 추진 중이며, 이번 정책펀드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이번 펀드가 성공적으로 운용되어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면, 향후 남부권 추가 정책펀드 조성의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과거 수도권 외 지역에서 성과를 낸 정책펀드 사례들이 해당 권역의 후속 펀드 규모 확대로 이어진 전례가 있다. 지역 대학과 연구개발특구,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기술사업화 벨트'를 구축하는 데 이번 펀드가 마중물이 된다면, 남부권이 수도권 이외의 자생적 벤처 허브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향후 전망: 선정 결과가 업계 판도에 미치는 영향
최종 선정 결과는 단순히 1050억원 운용권의 향방에 그치지 않는다. 선정된 3개 운용사는 남부권 대표 VC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게 되며, 이는 이후 민간 LP 유치와 후속 펀드 레이징에서도 강력한 레퍼런스로 작용한다. 특히 기관투자자들이 VC 출자 심사 시 정책펀드 GP 이력을 주요 신뢰 지표 중 하나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선정은 해당 운용사들의 중장기 성장 궤도를 좌우할 수 있다.
반면 선정에서 탈락한 운용사들은 정책자금 트랙 레코드 공백이 길어질 수 있어, 다음 공모 시즌까지 민간 자금 중심의 포트폴리오 구축에 집중해야 하는 전략적 과제를 안게 된다. 일부 후보사들은 이미 탈락에 대비한 플랜B로 민간 CVC(기업형 벤처캐피털)와의 공동 투자 협약 체결, 해외 LP 유치 다변화 등의 대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경쟁이 국내 지역 벤처투자 생태계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