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수익은 약 336억 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424억 달러와 비교하면 여전히 20% 이상 낮은 수준이다. 국내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극장 관객 수는 약 1억 2500만 명으로 팬데믹 이전 2억 2600만 명의 절반 수준을 겨우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극장 산업은 여전히 회복 중이지만, 그 이면에는 단순한 코로나 후유증이 아닌 구조적 변화가 도사리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OTT 플랫폼의 부상이다. 국내 주요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 수는 2024년 기준 합산 4000만 명을 훌쩍 넘어섰으며, 월 구독료를 내는 가구가 전체의 70%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소비자들은 이제 집 소파에서 4K 화질과 돌비 애트모스 음향으로 영화를 즐기는 데 익숙해졌다. 극장 티켓 한 장 가격이 1만 5000원을 넘어선 지금, 가성비를 따지는 관객들의 발길이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렇다면 극장은 이미 사양 산업인가. 이 물음에 필자는 단호히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역사를 돌아보면 라디오는 텔레비전이 등장해도 살아남았고, 비디오 대여점이 성행하던 시절에도 극장은 건재했다. 핵심은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얼마나 제공하느냐다. 극장이 단순히 영화를 틀어주는 공간으로만 기능한다면 도태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극장이 스스로를 재정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실제로 생존에 성공한 극장들의 공통점은 '경험 경제(Experience Economy)'로의 전환이다. 미국의 한 대형 극장 체인은 풀리클라이닝 시트, 레스토랑급 식음료 서비스, 성인 전용 상영관 등을 도입한 이후 객단가가 기존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에서도 고급 프리미엄 상영관의 매출 비중이 전체의 30%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스크린X, 4DX 같은 몰입형 포맷 상영관은 OTT가 절대 모방할 수 없는 물리적 감각을 제공한다. 관객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체험하러' 가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콘텐츠 전략도 근본적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현재 극장 흥행을 견인하는 것은 마블, DC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와 한국형 대작 블록버스터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 2023년 국내 박스오피스 상위 10편의 점유율이 전체 매출의 65%를 넘겼다는 사실은 그 편중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곧 중소 규모 작품의 극장 생존 공간이 극도로 좁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술영화 전용관, 지역 특화 상영 프로그램, 감독·배우와의 대화가 결합된 이벤트 상영 등 콘텐츠 다변화가 없다면 극장은 스스로 시장을 좁히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OTT와 극장의 관계를 '제로섬 경쟁'으로만 보는 시각도 재고해야 한다. 오히려 두 플랫폼은 상호 보완적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스트리밍 오리지널 영화의 극장 선(先) 공개 창구 활용이 늘고 있으며, 극장 흥행이 검증된 작품이 스트리밍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선순환 구조도 뚜렷해지고 있다. 극장 개봉 후 스트리밍 출시까지의 '홀드백(holdback)' 기간이 과거 90일에서 45일로 단축된 것은 산업이 이미 공존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대립보다 협력의 생태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양측 모두의 과제다.
사회적 관점에서 극장의 소멸은 단순한 산업 위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극장은 공동체가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동일한 감정을 나누는 거의 유일한 대중문화 의례(儀禮) 공간이다. 스트리밍 시대에 콘텐츠 소비는 점점 더 파편화되고 개인화되고 있다. 수백 명이 함께 웃고 울고 숨죽이는 그 집단적 경험은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개인화 콘텐츠로는 대체할 수 없는 인간적 가치를 품고 있다. 극장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가 함께 문화를 공유하는 방식 자체를 잃는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극장의 미래는 비관과 낙관 사이 어딘가에 있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실이다. 극장은 지금 단순한 상영 공간에서 탈피해 문화 복합 공간, 프리미엄 경험 플랫폼, 지역 문화 허브로 자신을 재발명해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 관건은 속도와 상상력이다. OTT가 줄 수 없는 것, 즉 어둠 속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 숨 쉬며 스크린을 바라보는 그 원초적 감동을 극장이 더 치열하게 설계하고 팔아야 할 때다. 극장의 위기는 곧 극장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가장 큰 기회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