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사회공헌, 사상 첫 1조 2천억 원 돌파

한국의 주요 종교단체들이 2026년 들어 사회공헌 활동의 범위와 깊이를 눈에 띄게 확장하고 있다. 종교계 사회공헌 연구기관인 한국종교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국내 4대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원불교)가 집행한 사회공헌 예산은 총 1조 2천억 원을 넘어섰으며, 이는 전년 대비 약 8.3% 증가한 수치다. 이는 국내 주요 대기업 사회공헌 예산 총합에 버금가는 규모로, 종교계가 민간 사회안전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장세가 단순한 예산 확충이 아니라, 활동 분야의 다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 구호를 넘어 현대적 의제로 확장

과거 종교계 사회공헌은 주로 빈곤층 식사 지원, 연탄 나눔, 수해 복구 봉사 등 즉각적 구호 활동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2026년 들어서는 기후위기 대응, 디지털 소외계층 지원, 청년 정신건강 케어라는 세 가지 현대적 과제가 종교계 사회공헌의 새로운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종교 기관이 사회 변화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요구를 먼저 포착해 실천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는 변화로 해석된다. 학계에서는 이를 '반응적 사회공헌'에서 '선도적 사회공헌'으로의 전환이라 부르기도 한다.

불교계, '탄소제로 사찰 프로젝트'로 에너지 자립 선도

불교계는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을 중심으로 전국 210여 개 사찰 부설 복지관에서 노인 돌봄과 아동 방과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의 기초 복지 공백을 메우고 있다. 특히 2026년 신설된 '탄소제로 사찰 프로젝트'는 전국 50개 사찰에 태양광 설비를 도입하고 인근 마을과 에너지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각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사찰이 가진 넓은 부지와 공동체 문화를 활용해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돕는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심 사찰의 경우 유휴 공간을 활용한 도시농업 프로그램과 결합해 식량 자급 교육까지 확장하고 있어, 환경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통합적 접근이 돋보인다.

개신교계, 디지털 격차 해소와 이주민 지원에 역량 집중

개신교계에서는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소속 교단들이 '디지털 이웃 사랑' 캠페인을 통해 고령층과 장애인을 대상으로 스마트기기 활용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2026년 상반기까지 전국 350개 교회가 참여해 누적 수혜자 수가 4만 5천 명을 돌파했으며, 이는 정부의 디지털 포용 정책과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서울·경기·부산 등 광역시 교회를 중심으로는 외국인 이주노동자와 난민 가정을 위한 법률 상담 및 한국어 교육 봉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청년 세대를 겨냥한 정신건강 상담 프로그램 '쉼표(,)' 역시 큰 호응을 얻어 참여 교회 수가 연초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었으며, 심리 상담사와 교회 공동체가 협업하는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천주교, 고독사 예방과 해양환경 복원에 앞장서

천주교는 카리타스 코리아(한국가톨릭사회복지회)를 통해 국내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고독사 예방을 위한 '이웃 살핌' 네트워크를 16개 본당에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독거노인 가구에 스마트 안전 센서를 무상 보급하는 사업도 병행 중이다. 이는 1인 가구 급증과 초고령사회 진입이라는 사회 구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제주교구는 해양 쓰레기 수거 봉사와 갯벌 복원 캠페인을 정례화해 환경 분야 사회공헌의 모범 사례로 떠올랐으며, 인근 학교 및 어촌계와의 협력 거버넌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원불교, 농어촌 의료 공백과 생태 교육 병행

원불교는 원광대학교 산하 사회복지 네트워크와 연계해 전북·전남 농어촌 지역의 의료 취약 계층을 위한 순회 진료 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농어촌 지역은 의료기관 접근성이 도시의 절반 수준에 그쳐 종교계의 의료 봉사가 실질적 생명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의가 크다. 또한 청소년 대상 생태·생명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 미래 세대에게 자연과의 공존 가치를 전하는 교육적 역할도 강화하고 있다. 원불교의 이 같은 접근은 종교적 생명 존중 사상과 환경 실천을 연결하는 독자적 모델로서, 다른 종교 단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파트너십 모델로 진화…정부·시민사회와 협력 구조 강화

전문가들은 종교계의 사회공헌 활동이 단순 시혜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와의 파트너십 모델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거에는 종교 기관이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구조였다면, 현재는 지방자치단체, 사회적 기업,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설계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사회공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동시에 종교 기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한국종교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종교계가 공공 영역의 빈 틈을 메우는 보완자 역할을 넘어, 사회 혁신을 주도하는 변화 주체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명성·책임성 확보가 다음 과제

그러나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투명한 예산 공개와 외부 감사 체계 미흡이라는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종교 기관의 사회공헌 예산 집행 내역이 체계적으로 공시되지 않아 성과 검증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부 선진국에서는 종교 기관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독립적 평가 기구를 운영하거나 공익법인 공시 제도를 통해 투명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종교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종교 기관의 사회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공헌 활동의 성과 측정과 공시 체계를 제도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정부와 종교계,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향후 전망: 종교계 사회공헌의 제도화와 지속 가능성

전문가들은 종교계 사회공헌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자체적인 성과 측정 지표(KPI) 도입과 제3자 검증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나아가 정부의 사회서비스 바우처 사업, 지역사회 통합돌봄 정책 등과의 연계를 강화해 중복 투자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언도 나오고 있다. 초고령사회 본격화, 기후변화 심화, 1인 가구 증가 등 구조적 사회 문제가 심화될수록 종교계의 사회공헌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종교계 사회공헌의 양적 성장이 질적 책임감과 맞물릴 때 비로소 그 사회적 가치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