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한일 경제협력 고위급 논의 본격화
한국과 일본이 2026년 들어 경제협력 심화를 위한 고위급 협의를 잇달아 진행하면서 양국 관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양국 정부는 반도체·이차전지·수소에너지 등 미래 첨단산업 분야에서 공급망 연계와 공동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2025년 이후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더욱 격화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이 인접한 기술 강국으로서 전략적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재계와 정계 모두에서 빠르게 형성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 산업 구조 재편과 맞닿은 실질적 이해관계의 수렴이라는 점에서 과거 협력 논의와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심 의제로 부상한 공급망 연계와 공동 R&D
업계에 따르면 한일 양국 경제단체는 올해 상반기 도쿄와 서울에서 각각 무역·투자 확대 협의체 회의를 개최하고, 핵심 광물 안정적 확보와 첨단 제조업 협력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은 한국의 배터리·반도체 제조 역량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술력과의 연계를 통해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려는 전략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평가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상호 보완적으로 맞물리면서, 단순 교역을 넘어 기술·자본을 아우르는 포괄적 협력 프레임이 논의 테이블에 오르고 있다. 특히 리튬·코발트·희토류 등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제3국 공동 자원 개발 프로젝트 구상도 논의선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 수출규제 사태가 남긴 교훈과 반면교사
지난 2019년 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 사태는 한국 산업계에 공급망 다변화의 절박한 필요성을 일깨운 분수령이었다.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대 소재의 대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국산화 노력이 가속화됐고, 역설적으로 이 경험은 양국이 협력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 기업들은 소부장 자립화와 동시에 일본 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병행 추진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이 현재의 협력 논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2019년의 갈등이 역설적으로 양국 산업계가 상호 의존의 실체를 직시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평가하며, 이 경험이 지금의 협력 논의를 보다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이끄는 자산이 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관광·문화 교류 회복, 협력의 사회적 토대 구축
관광·문화 교류의 뚜렷한 회복세도 양국 경제협력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2026년 상반기 기준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 수와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 모두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한류 콘텐츠의 지속적 인기와 엔화 환율 변동에 따른 여행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민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으며, 이는 정부 간 협력 논의에도 긍정적인 사회·심리적 분위기를 제공하고 있다. 민간 교류의 확대는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양국 국민 간 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협력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평가된다.
미·중 패권 경쟁 속 한일 협력의 지정학적 의미
한일 경제협력 논의가 가속화되는 배경에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거시적 지정학 변수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배터리·AI 분야에서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핵심 파트너로 묶이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 등이 촉발한 공급망 재편 압력은 한일 양국이 기술·산업 협력을 심화할 구조적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양자 관계를 넘어 인도·태평양 전략의 맥락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미국이 한일 양국의 협력 심화를 명시적으로 독려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논의에 추가적인 동력을 부여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여전한 신중론…미해결 역사 현안의 그림자
다만 한일 경제협력 확대가 순탄하게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론도 존재한다. 역사 인식 문제, 독도 영유권,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등 민감한 현안들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양국 관계가 언제든 다시 경색될 수 있다는 지적이 학계와 시민사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실제로 과거 양국 관계는 경제 협력이 진전되는 시기에도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 급속도로 냉각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 전문가들은 경제 실익을 중심으로 한 실용적 협력을 유지하되, 역사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대화 채널도 함께 가동하는 이른바 '투 트랙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민간 협력 생태계 구축이 관건
전문가들은 한일 경제협력의 장기적 성과를 위해서는 정부 간 합의를 민간 기업 현장으로 연결하는 협력 생태계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양국 정부의 관계 개선 의지가 실제 기업 현장의 투자와 거래 확대로 이어지려면 규제 완화, 비자 제도 개선, 기술 표준 상호 인정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 수준의 기술 교류 및 공동 창업 생태계 형성이 대기업 중심의 협력 구조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양국 청년 기업인과 연구자 간 교류 프로그램의 제도화가 장기적 협력 기반을 강화하는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주목된다.
정상회담과 경제각료회의, 향후 관계의 분수령
향후 열릴 한일 정상회담과 경제 각료회의에서 어떤 수준의 합의가 도출될지가 양국 관계의 실질적 방향을 가늠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첨단산업 협력 로드맵의 구체적 수치 목표 설정, 공동 R&D 펀드 조성, 핵심 광물 공동 조달 메커니즘 구축 등이 합의 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력 논의가 과거의 일시적 화해 무드에 그치지 않고 제도화된 협력 체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구조적 협력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양국이 공동으로 설계하는 '한일 첨단산업 파트너십 로드맵'이 이번 논의의 최종 성과물로 제시될 수 있을지 국내외 산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