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초안 공개…핵심 조항은 무엇인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말 '생성형 AI 안전·신뢰 기반 조성을 위한 특별법' 초안을 공개하고, 이달 중 공청회를 거쳐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안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사전 적합성 평가 의무화, 딥페이크 콘텐츠 생성·유통 금지, 학습 데이터 출처 공개 요건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한 가이드라인 수준을 넘어, 위반 시 법적 제재가 가능한 구속력 있는 규제 체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되고 있다. 국내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점에 정부가 본격적인 규제의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법안은 향후 산업 지형을 바꿀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법안의 배경: 왜 지금인가

이번 특별법 추진은 챗GPT, 제미나이 등 글로벌 생성형 AI 서비스의 급속한 확산과 그에 따른 사회적 우려가 맞물린 결과다. 국내 딥페이크 범죄 건수는 최근 수년간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선거·금융·의료 분야에서 AI 오남용에 따른 피해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제도적 안전망이 현저히 뒤처져 있다는 인식이 입법을 서두르는 주된 동인으로 작용했다. 글로벌 주요국들이 속속 AI 규제 입법에 나서고 있는 국제적 흐름도 국내 입법 논의를 가속화하는 배경이 됐다.

대형 플랫폼의 속내: 불가피하지만 부담스럽다

국내 대형 플랫폼 기업들은 일정 수준의 규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세부 조항이 과도한 행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사전 적합성 평가 제도 도입 시 심사 기간 동안 제품 출시가 지연돼 글로벌 경쟁사 대비 시장 진입 속도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지적이 핵심이다. 신규 AI 서비스의 경우 출시 타이밍이 시장 선점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하는 만큼, 수개월에 달할 수 있는 심사 기간은 치명적 핸디캡이 될 수 있다. 국내 주요 IT 기업 관계자들은 비공개 간담회 등을 통해 심사 기간 단축과 패스트트랙 도입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경고음: '해외 이전 가속화' 우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규제 도입 시 국내 AI 스타트업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 초기 단계 AI 스타트업들은 대기업에 비해 법무·컴플라이언스 전담 인력과 자본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규제 준수 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미 일부 국내 AI 스타트업들이 규제 환경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싱가포르, 아랍에밀리트(UAE) 등으로 법인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는 업계 내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단순한 기업 이전을 넘어 핵심 인재와 기술 역량의 해외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당국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시나리오다.

규제가 오히려 경쟁 무기가 될 수 있다

반면 신뢰 기반 생태계 구축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AI 윤리 분야 전문가들은 명확한 규제 기준이 마련될 경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안전한 AI'를 표방하며 차별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라 실제 시장 변화에 근거한 분석이다. EU AI법 시행 이후 규정 준수 능력 자체가 B2B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 우위 요소로 부상한 사례가 이미 확인되고 있으며, 특히 의료·금융·공공 분야에서 AI 솔루션을 도입하려는 기업들이 공급사의 규제 준수 여부를 핵심 구매 기준으로 삼고 있다. 국내 일부 대기업들은 이미 'AI 컴플라이언스' 전담 조직을 신설하며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규제 지형: 미국·중국·EU의 서로 다른 접근법

한국의 규제 논의는 글로벌 동향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단일 AI 규제법 대신 부문별 가이드라인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민간 혁신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이다. 반면 중국은 자국 생성형 AI 서비스에 대한 등록제와 콘텐츠 심의 의무를 이미 시행 중이며, 국가 안보와 이념적 통제를 규제의 핵심 목표로 삼는다. EU AI법은 위험 등급에 따른 차등 규제 원칙을 채택해 국제 표준의 기준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 실질적인 글로벌 AI 규제의 준거 틀로 자리 잡는 '브뤼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이 어떤 모델을 선택하느냐는 단순한 국내 정책을 넘어 국제 무역과 기술 협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형 모델의 조건: 국제 상호운용성 확보가 관건

전문가들은 한국이 독자적 AI 규제 모델을 구축하되 국제 기준과의 상호 운용성을 반드시 확보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만약 한국의 규제 체계가 EU AI법이나 국제표준화기구(ISO)의 AI 관련 표준과 호환되지 않을 경우, 국내 기업들이 유럽 시장에 진출할 때 이중 인증 부담을 안게 될 수 있다. 이는 비용 증가뿐 아니라 해외 기업들의 국내 시장 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역설적 상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법안 설계 단계부터 OECD AI 원칙, EU AI법의 핵심 개념 등과의 정합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중소·스타트업 보호 장치: 정부 지원 방안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망 설계도 법안의 핵심 과제다. 정부는 매출액 기준 일정 규모 이하 기업에 대해 의무 이행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중소 AI 기업들이 적합성 평가를 원활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공공 컨설팅 지원, 평가 비용 보조, AI 안전 인증 인프라 구축 등의 병행 지원책도 논의되고 있다. EU의 경우에도 AI법 시행과 함께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AI 규제 샌드박스'와 'AI 혁신 허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정책 설계에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된다.

공청회 이후가 진짜 시작…산업계·시민사회 모두 주목

AI 산업 육성과 안전 규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정부의 시도는 이달 공청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에 돌입한다. 업계, 시민사회, 학계가 공청회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느냐가 법안의 최종 형태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특히 딥페이크 규제 범위, 학습 데이터 공개 수준, 사전 평가 대상 AI 시스템의 기준 등 쟁점 조항들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간 갈등이 첨예하게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 상당한 논의 과정이 남아 있는 만큼, 기업들은 지금부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컴플라이언스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