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의 최신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5%에 달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15%대에 머물렀던 수치가 두 배 이상 뛰어오른 것이다. 1인 가구는 이제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됐다. 그런데 이 숫자 뒤에 숨은 감정의 무게를 우리 사회는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는가.

외로움은 오랫동안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로 치부돼 왔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니 감당하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외로움을 '글로벌 공중보건 위기'로 선언하고 사회적 고립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권고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했고, 일본도 2021년 '고독·고립 담당상' 직위를 신설했다. 한국만이 아직 이 문제를 개인의 영역에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봐야 한다.

외로움이 단순한 감정적 불편함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연구팀은 만성적 외로움이 흡연 하루 15개비에 맞먹는 건강 위험을 유발하며, 조기 사망 가능성을 26% 높인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 고독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사 사망자 수는 2022년 기준 3,378명으로 5년 전보다 40% 이상 증가했다. 이 중 상당수는 20~40대 젊은 1인 가구였다. 외로움은 더 이상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관계의 질'보다 '관계의 부재' 자체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복지재단의 조사에서 1인 가구의 31.4%가 '위급 상황 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 SNS와 메신저 앱이 넘쳐나는 초연결 시대에 정작 실질적인 돌봄과 연대의 고리는 끊어지고 있다는 역설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는 관계를 보완할 수는 있지만 대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외로움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핀란드는 2010년대부터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 제도를 도입해 의사가 고립된 환자에게 약 대신 지역 모임, 자원봉사, 예술 활동 참여를 처방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도 이 제도를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외로움으로 인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도 주민센터와 공공 의료기관을 연계한 사회적 처방 시범사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회 차원의 물리적 공간 설계도 중요하다. 서울의 한 자치구에서는 1인 가구 밀집 지역에 '혼자이지만 함께하는' 공유 부엌과 커뮤니티 라운지를 설치했고, 이용자의 78%가 이웃과의 교류가 늘었다고 응답했다. 공동체 의식은 거창한 구호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밥 한 끼를 나누는 일상에서 싹튼다. 도시 계획 단계부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우연한 접촉의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과 고용 환경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택근무의 확산과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구조는 생산성과 유연성을 높였지만, 동시에 직장이라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연결망을 해체시키고 있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나 프리랜서 비중이 높은 20~30대 1인 가구는 직업적 고립과 사회적 고립을 동시에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고용주에게 사회적 연결 지원 프로그램 운영을 의무화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적 접근도 고려해봐야 한다.

외로움에 대한 낙인을 지우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외롭다'고 말하는 것이 나약함의 표시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다. 정신건강 캠페인이 우울증과 자살에 집중하는 동안, 그 이전 단계인 만성적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조용히 방치돼 왔다. 외로움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 그리고 그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는 것이 이 시대 공동체의 최소한의 의무다.

1인 가구의 증가는 거스를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거나 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이 연결되고 돌봄받을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외로움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숙명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설계해야 할 사회의 문제이고, 지금 당장 답을 내놓아야 할 공동의 숙제다. 늦을수록 그 대가는 더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