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오랫동안 법복을 입은 판사와 전문 법률가들만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2008년 1월부터 한국에서도 평범한 시민이 법정에 들어와 피고인의 운명을 판단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바로 '국민참여재판' 제도다. 이 제도는 형사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 만 20세 이상의 일반 시민 배심원단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및 형량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도록 설계됐다. 도입 당시 한국 사법 역사상 가장 큰 구조적 변화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제도의 핵심은 '배심원단' 구성이다. 법원은 무작위로 선정한 주민등록 유권자 명부에서 후보자를 소환하고, 검사와 변호인이 각각 기피 신청을 통해 편향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걸러낸다. 최종적으로 사건의 중대성에 따라 5인, 7인, 9인의 배심원이 구성된다. 법정구속형이 예상되는 중범죄나 사형·무기징역이 가능한 사건은 9인 배심원제를 적용한다. 배심원 외에 2인의 예비배심원도 선정돼 심리 도중 이탈 상황에 대비한다.
재판 절차는 일반 형사재판과 유사하지만 배심원을 위한 장치가 추가된다. 재판장은 공판 첫날 배심원에게 법적 쟁점과 적용 법률을 쉬운 언어로 설명하는 '배심원 설시'를 진행한다. 검사와 변호인은 배심원이 이해할 수 있도록 증거와 논증을 시각적으로 구성해야 하며, 전문 법률 용어 대신 일상 언어를 사용하도록 권고받는다. 증인 신문과 증거 조사가 끝나면 배심원단은 별도 평의실로 이동해 독립적인 토론을 거쳐 평결을 내린다.
그러나 한국의 배심원 평결은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권고적 효력'만 가진다는 점이 결정적 차이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평결에 법적으로 구속되지 않는다. 실제로 판사가 배심원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린 사례도 적지 않다. 사법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22년까지 국민참여재판 전체의 약 8~12% 사례에서 판사 판결이 배심원 평결과 달랐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명목상 참여'에 그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활용률 저조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08년에는 약 60여 건이 진행됐고, 이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였지만 전체 형사 1심 재판 건수 대비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피고인 신청을 법원이 배제할 수 있는 조항도 존재해, 실제로 신청 건수의 상당수가 법원 직권으로 일반 재판으로 전환된다. 배심원 참여에 대한 일당 보상(2024년 기준 일 최대 10만 원 수준)이 직장인 참여를 유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적 문제도 참여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비교법적 시각에서 보면 한국의 제도는 일본의 '재판원제도'와 유사성이 높다. 일본은 2009년 도입한 재판원제도를 통해 6명의 시민과 3명의 직업 판사가 합의체를 구성하며, 평결의 구속력이 보다 강하다. 반면 미국의 배심제는 만장일치 또는 다수결 평결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판사가 이를 뒤집는 것은 극히 예외적이다. 한국 제도가 '참여'와 '견제'라는 두 가지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려면 평결의 구속력 강화 문제를 입법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계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의 진정한 의미는 결과만이 아닌 과정에 있다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는다. 시민이 직접 증거를 듣고 법의 언어로 판단을 내리는 경험은 사법 신뢰도와 법 인식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한다. 법원행정처가 참여재판 종료 후 배심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0% 이상이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답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하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제도 도입 17년을 맞은 지금, 국민참여재판은 양적 확대와 질적 강화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대상 범죄 확대, 배심원 평결 구속력 부여, 참여 보상 현실화 등이 입법 논의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된다. 사법 민주화는 단순히 법원 건물 문을 시민에게 여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판단이 실질적 힘을 갖도록 구조를 설계하는 데 달려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상징을 넘어 실질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는 데 법조계와 시민사회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