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골드만삭스가 발표한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약 3억 개의 일자리가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한국고용정보원이 국내 직업의 약 52%가 자동화 고위험군에 속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 숫자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할 때마다 사람들이 찾는 처방전은 대개 하나다. '창의적인 일을 하라.' 하지만 이 단순한 처방은 과연 충분한가.

창의성이 AI 시대의 핵심 생존 전략으로 떠오른 데는 분명한 근거가 있다. 반복적·규칙 기반 업무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이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회계 장부 정리, 단순 법률 문서 검토, 의료 영상 판독 보조 등은 이미 AI가 상당 부분 침투한 영역이다. 반면 새로운 예술 장르를 개척하거나 전례 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는 일은 AI가 흉내 내기 어렵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에는 치명적 맹점이 숨어 있다.

AI는 이미 창의성의 영역을 빠르게 침범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한다. 국내 한 스타트업이 개발한 AI 작곡 도구는 장르와 분위기를 입력하면 수십 초 안에 완성도 높은 음악을 생성해낸다. 광고업계에서는 AI가 카피라이팅과 시각 디자인 초안을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주니어 크리에이터의 역할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창의성'이라는 울타리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허물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대체 불가능한 직업의 조건은 무엇인가. 편집자의 시각에서 보면 세 가지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 그 답이 있다. 첫 번째는 '공감과 감정적 연결'이다. 심리상담사,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아동 교육자는 기술적 지식보다 인간 감정의 미묘한 결을 읽고 반응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환자는 같은 정보를 전달받더라도 AI보다 인간 의사에게서 들을 때 치료 순응도가 평균 34% 높게 나타났다. 정보의 정확도보다 관계의 맥락이 더 중요한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

두 번째 축은 '윤리적 책임과 상황 판단'이다. 판사가 형량을 결정할 때, 외교관이 협상 테이블에서 타협점을 찾을 때, 기업 이사회가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며 의사결정을 내릴 때, 이 과정에는 단순한 데이터 최적화를 넘어서는 가치 판단이 개입한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적해를 제시할 수 있지만, 그 최적해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 놓여 있는지를 스스로 책임지지 못한다. 알고리즘이 결정한 채용 심사에서 특정 집단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사례들이 잇따르면서, 의사결정의 윤리적 책임 주체로서 인간의 역할은 오히려 더 무거워졌다.

세 번째 축은 '신체적 유연성과 현장 적응력'이다. 이는 종종 논의에서 빠지는 부분이다. 배관 수리공, 소방관, 조산사, 물리치료사는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 손과 몸으로 즉각 대응해야 하는 직업이다. 로봇 기술이 발전하고 있지만, 좁은 공간에서 구불구불한 파이프를 교체하거나 갓 태어난 신생아를 섬세하게 다루는 행위는 현재 기술 수준에서 인간을 따라오기 어렵다. 맥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는 신체적 민첩성과 공간 인식 능력을 요구하는 직업군이 2030년까지 자동화 위험도가 가장 낮은 집단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 전망했다.

결국 AI 시대의 직업 생존력은 단일한 역량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복합적 역량이 얼마나 두텁게 쌓여 있는가에 달려 있다. 창의성은 그 복합 방정식의 중요한 한 변수일 뿐, 유일한 변수가 아니다. 교육 현장에서 창의력 교육만을 강조하면서 공감 훈련, 윤리 교육, 현장 실습을 경시하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AI에 가장 빨리 대체될 세대를 키워내는 역설에 빠질 수 있다. '창의성 신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 인간이 가진 다층적 역량의 지형을 냉정하게 다시 그려야 할 시점이다.

기술은 인간의 일부 역할을 빼앗는 동시에 새로운 역할을 창출한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에 넘기면서도 결국 더 많은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냈듯이, AI 혁명 역시 새로운 직업의 지형을 그릴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속도는 과거 어느 산업혁명보다 빠르며, 적응에 실패한 개인과 사회가 치를 대가 또한 클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AI가 못 하는 것'을 찾아 그곳으로 도망치는 전략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을 더 인간답게 깊어지게 하는 전략이다. 창의성은 그 여정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